내글 모음

[스크랩] 딸년 도둑년의 유래.........

행복 뚜엣 2011. 11. 22. 10:16
볼륨시계바늘 - 신유음악을 들으려면원본보기를 클릭해주세요.

지금도 농담 삼아서 하는 말 딸년 도둑년.

요즘은 딸은 이쁜 도둑이란 말이 있다.

 

조선의 五賢하면 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조광조(趙光祖)·이언적(李彦迪)·이황(李滉) 을 가리킵니다.

딸년 도둑년 이란 말은 ?

유네스코지정 세계유산 전통 민속마을 경주 양동마을의 회재 이언적 선생의 모친에게서 유래된 말입니다.

 

회재 이언적 선생의 모친은 경주손씨(慶州孫氏) 손소의 5남2녀중 큰딸이면서

본관은 여주(驪州) 이씨 집안 이번(李蕃)의 처로 들어와서 회재 선생을 후사로 두었으면

일찍 남편과 사별 후 형편이 여의치 않아서 여주의 본가 집 뒤에 남편의 가묘를 써 놓고 

아들인 회재 선생을 대리고 친정의 양동마을로 돌아 왔다. 

 

원래 양동 마을은 월성손씨들이 집성촌이었다.

회재선생은 양동마을 외가에 들어와서 둘째 외삼촌인 손중돈에게서 글을 익혔다.

 

세월이 흘러서 회재선생의 외할아버지인 손소가  세상을 하직하자

아들 5형제가 모여서 양동마을 뒷산 명당에 아버지의 장지로 정하고 초상을 치르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그날 밤 회재 선생의 모친 이면서 손소의 큰딸이 이 사실을 알고

밤새도록 마을 앞 강의 물를 양동이로 퍼다 친정아버지의 장지인 명당에 부었다.

 

다음날 장지에서는 물이 나는 곳은 묘를 쓸수가 없다는 관례에 따라

급하게 다른 곳을 찾아서 손소의 장례를 치른다.

 

그런 다음 손소의 큰딸인 회재 이언적 선생의 모친은 친정의 오빠를 찾아가서

친정 아버지의 묘를 쓸려다 물이 스며나서 못쓴 명당을 내어 주라고 한다.

친정에서 그 곳은 물이 생겨서 쓸수가 없다고 하지만

 

회재 선생의 부친의 묘를 가세가 기울은 탓에 여주 본가 집 뒤에 가묘를 해두었다는

사실를 이야기 하면서 묘 터에 물이 생겨도 좋으니 내어 주라고 부탁을 한다.

그러한 연유로 회재선생의 부친 이번(李蕃)의 묘가 양동마을 뒷산 명당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 이후에 세월이 흘러.......

양동마을은 경주손씨(慶州孫氏)의 집성촌이었으나 가세가 기울고

여주(驪州)이씨 들은 양동마을에서 번성하여 양동 마을은 여주(驪州)이씨들의 집성 촌이 되었으며

현재 여주(驪州)이씨의 종가집도 원래는 경주손씨(慶州孫氏)의 종가였는데

경주손씨(慶州孫氏)의 종손이 여주(驪州)이씨의  종손에게 매매로 인해서 종가의 주인이 바뀌었다.

 

그러한 연유로 현재에도 경주손씨(慶州孫氏) 문중에서는

주객전도(主客顚倒)되어 마을 내어주고 종가 내어주고

딸 잘 못치워서 집안이 기울었(망했)다는 말이 생겼으며

딸년 도둑년이란 말이 생겼다...

그리고 외손주를 키우느니 마당의 개를 키우는게 낫다는 말이 생겼다.

 

그런 반면에 여주(驪州)이씨의 문중 입장에서 보면 며느리 한사람 잘 들어와서

후대에 집안이 번성하여 조선의 五賢 양반의 명문을 이루었다 는 말을한다.

 

여주(驪州)이씨 회재 이언적 선생의 24세 손인 나의 관점에서 보면

친정의 가문의 딸로서 지금 내가 이루어 놓은 집 안의 며느리로서 후사를 둔 입장에서 본다면

나도 그런 입장이라면 회재선생의 모친 처럼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머니의 지극한 자식 사랑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자식을 둔 어머니의 마음은 변함이 없으니

그래서 앞으로도 딸은 도둑 이란 말이 맞는 말이다.

 

그리고 며느리인 입장에서는 변하지 않는 진리인 말이다............ ㅋㅋㅋㅋㅋ

 

 

 

 

 

 

 

 

 

 

출처 : 엔돌핀이 있는 마을
글쓴이 : 행복 뚜엣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