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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남자,사람>.2

행복 뚜엣 2011. 5. 19.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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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르게 찰떡을 먹은 사공은 새벽바람을 헤치며

말을 달려 가까스로 약속한 압록강에 도착을 했는데...  사공이 따라온 사신에게

내가 글을 전혀 모르니까 내가 묻는걸 한문으로 얘기해 달라고 하더랍니다

강 건너에도 보니까 물색 두루막을 입고 당나라 사신 몇이 배를 타고 와서 강 중간에서

뱃머리를 맞대고 섰지요

 

당나라 사신이 누가 사신이냐고 묻자  여기 사공이 사신이라고 가르켜 주니  놀라면서

<애매한 목숨 하나만 없애는구나> 하더랍니다

본격적으로 대결이 시작되었는데~ 당나라 사신이 사공을 보더니만..... 

 

鳥啄丁丈目(조탁정장목)...이라 <새가 사공의 눈을 쪼았구나>  하니까   응답을 해야 하는데

사공이 당나라 사신을  보니까 입이 약간 삐뚤어져서  뱃사공이 귓속말로

<입이 바람을 맞아서 돌아갔다>를 뭐라고 하느냐고

신라 사신에게 묻자 使臣風治口(사신풍치구)라고 하자 ... 큰 소리로 "사신풍치구"라 하니까

 

사신이 얼굴이 붉어지더니 이번에는 느닷없이 손가락 세개를 쫙 펴서 내미는 겁니다

순간 신라 사신이나 뱃사공이나 얼굴이 꺼매졌지요  저거 손가락 세개의 뜻을 모르면 죽을

판인데 둘 다~ 답을 못찾고 있는데  사공이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저 놈이 글도 잘하고

귀신같은 놈이라   내가 어젯밤에 찰떡 먹은걸 아는가??  싶어서 죽기 살기로 손을 펴서

다섯개를 먹었노라고 하니...  당나라 사신이 멍하니 섰다가  종이에 뭐라고 써놓고 물로

뛰어 들더랍니다

 

당나라 사신은 속으로 삼강(三綱)을 아느냐로  물었는데 사공은 오륜(五倫)도 안다로  해석이

되어버린 겁니다   황제에게 바치는 서신엔 신라는 사공도 나보다 글이 나은데 황제나라의

사신으로써 수치스러움을 느껴 목숨을 끊으니 신라와 동맹을 맺음이 당연하고 썼더랍니다

 

개그성이 있는 얘기지만 그럴듯 하지요~??

사실 역사란 것은 정사(正史)는 집권한 자들이 쓰는 것이라서 정사보다는 구전되여 오는

야사(野史)가 훨씬 신빙성이 있는 것이 많습니다.

 

제자리로 돌아와서 측천무후도 67세라는 나이로 황제에 등극을 했지만 정치란 것이  적을

죽이지 않으면 본인이 다치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잔혹한 정치를 펼쳤으나 그녀의

정치는 당 태종 이세민 이후로 정치를 잘 한 여인이였기도 하지요

정치로써 피를 뿌린 자리에는 반드시 수확이라는 열매가 열리는데  이 열매는 권력이라는

흉기로 변해서 수많은 역사로써 재탄생을 합니다

 

측천무후는 24살의 아들에게 독약을 먹여서 죽여 버리고 황제의 길을 택하였지만 
그녀의 종말은 장안 상양궁에서 8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 했지요  그래도 미모는 여전히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기왕에 여자 얘기가 나왔으니까 양귀비 얘기를 한번 더 해보지요

중국에 4대 미인을 얘기하라면 양귀비,초선 서시,왕소군이지요

왕소군에 관한 詩가 저한테 한편 있는데 다음에 올려 드릴께요..너무나 애절해서~~

 

이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여인이 양귀비겠지요??

양귀비의 본명은 양옥환입니다 고문진보에 나오는 백거이가 지은 <장한가>라는 詩에서도

현종이 양귀비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알 수 있지요   현종은 그 당시 내시로 유명한 고역사의

소개로 양귀비를 알게 되였는데  양귀비가 현종의 아들인 수왕의 부인이니까 며느리를 빼앗아서 

사랑을 한겁니다  웃기지요~~??

 

욕을 얻어 먹더라도 예쁜 여자는 내가 데리고 살아야지요..ㅋ     아까워서 누굴 줍니까?

현종은 사랑에 빠져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회를 여는데  정치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이 당시 양귀비가 22살....  현종은 57살이 였지요  사랑에  빠질만도 하지요~??

참는 것도 한 두번이지 썩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 안록산이라는 자가 반란을 일으키지요

 

현종은 촉나라로 도망을 가던중 마외파(馬嵬坡)라는 고개에서 반란군에게 잡혀서 양귀비의

4촌 오빠인 양국충과 양귀비를 죽일 것을 강요하니 현종이 어쩔수 없이 사사(賜死)하라고

명을 내렸지요

양귀비는 자기를 소개한 고역사의 손에 마외파 부근의 절에서 목을 졸라 죽였다고 합니다

양국충은 이 당시 관직을 40개나 가진 권력자 였지요      장한가(長恨歌)  말미에.....

 

在天願作比翼鳥   재천원작비익조

죽어서 하늘에 사는 새가 되려거든 비익조가 되고

在地願爲連理枝   재지원위연리지

땅에 살려거든 서로 붙어 사는 나뭇가지가 되자.....라고 했지요

 

比翼 連理枝~~비익조는 눈 하나  날개가 하나인 새로 둘이 되어야 비로소 날 수 있고

                            연리지는 두 나무의 가지가 서로 붙은 것으로 남녀간의 애정을 두터움을

                            일컫는 말로 아직까지 자주 쓰이고 있습니다

 

마지막 구절은~~

 

地久有時盡     하늘과 땅이 길고 오래 간다지만 다 할 때가 있으나

綿綿無絶期     이처럼 슬픈 사랑은 면면히 이어져  끊어질 날이 없으리...

끝을 맺지만~ 그래서 제목을 장한가로 지은 겁니다   ☞